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Let It Be (문단 편집) == 제작 과정 == ||[[파일:1969getbacksession.jpg|width=100%]] || [[파일:1969getbackoriginal.jpg|width=100%]] || |||| 초기에 의도했던 "Get Back" 앨범 아트와 그에 쓰였던 사진.[* [[Clayton Hickman]]이 네거티브 필름을 복원했다 [[https://twitter.com/claytonhickman/status/1313809056793067521?s=20|#]]][br] '초기 시절로의 회귀'를 표방하며 [[Please Please Me]] 앨범 커버를 재현했다.[* [[Please Please Me]] 커버와 해당 커버를 [[https://twitter.com/claytonhickman/status/1313904118046625798|합성해놓은 사진]]도 있다. 해당 합성 이미지는 [[비틀즈: 겟 백]]의 공식 포스터로 사용됐다.] || 멤버들의 갈등이 심해진 [[1968년]] 후반, 폴 매카트니는 밴드의 와해를 막아보기 위해 '초기의 [[로큰롤]] [[음악]] 시절로 돌아가 투어를 재개해보자.'는 취지에서 앨범 '겟 백([[Get Back]])' 및 앨범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안하게 된다. 이듬해 [[1969년]] 초 추운 겨울날 비틀즈가 모인 곳은 녹음스튜디오가 아닌 런던 근교의 영화 촬영장인 [[https://en.wikipedia.org/wiki/Twickenham_Studios|트위크넘 스튜디오]]였다. 좁은 녹음실 안에는 촬영 기재를 설치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youtube(AjStytdhgdw)]||[youtube(MmDZbjI8nHw)]|| || 'Get Back' || 'I've Got a Feeling' || 그러나 촬영 스튜디오는 커다란 창고나 다름 아닌 공간이었고 그 매서운 겨울 공기가 아니더라도 비틀즈는 이미 아주 차갑게 냉각되어 있던 상태였기 때문에 트위크넘에서의 촬영은 멤버들의 말다툼 끝에 중단되었다. 기타 연주를 놓고 실랑이를 벌인 폴과 조지의 다툼 역시 이 트위크넘에서 벌어진 일이다. [[비틀즈: 겟 백]] 다큐를 보면 조지가 밴드 탈퇴를 선언한 뒤 폴이 심란한 표정으로 울먹이듯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https://youtube.com/watch?v=RYzjNE0_NKY|#]] 결국 모든 프로젝트가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는 조지 해리슨을 설득하기 위해 여러차례 비공개 미팅을 가졌다. 끝내 조지 해리슨은 멤버들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제안에는 새로 개장한 [[애플 레코드|애플]] 스튜디오로 옮겨 녹음을 진행한다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지지부진했던 앨범 작업을 진전시키기 위해 [[빌리 프레스턴]]을 키보드 세션으로 초대했다. 새로 스튜디오에 합류한 빌리 프레스턴에게 멤버들은 친화적인 태도를 보였고, 이는 세션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개선시키는 효과를 낳기도 했다. 이윽고 촬영은 재개되었지만 영화는 텔레비전용 다큐멘터리로 변경 되었다가 다시 극장용 영화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는다. 재개된 프로젝트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3년만에 열릴 비틀즈의 라이브 공연이었다. 당시 멤버 네 명 모두 무대에 대한 향수와 뮤지션으로서 라이브에 대한 욕구를 느끼고 있었지만 3년간 무대에 서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투어를 중단했던 1966년과는 업계 환경이 너무 많이 변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선뜻 나서질 못하던 상황이었다. 논의 끝에 대중적인 콘서트가 아닌 역사적인 명소에서 일회성으로 공연을 하고 이를 필름에 담기로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멀리 나가야 한다는 [[귀차니즘]] 때문에 무산되었다. 결국 역사적인 명소가 아니라 애플 스튜디오에서 매우 가까운, 애플 스튜디오의 옥상으로 결정이 났다. [* 역사적 명소에서 무관객 공연을 펼친다는 최초의 아이디어는 훗날 [[핑크 플로이드]]에 의해 [[Meddle|Echoes]]를 [[폼페이]]에서 선보이며 실현된다. [[https://youtube.com/watch?v=y-E7_VHLvkE|#]]] ||[youtube(NCtzkaL2t_Y)]|| || [[1969년]] [[1월 30일]] 옥상(Rooftop) 공연에서 선보인 '[[Don't Let Me Down]]'[br][[Get Back]] [[싱글(음악)|싱글]]의 B사이드로 싱글컷 되며 앨범에는 미수록된다. || 영화 촬영 계획에 따라 겨울 바람이 매섭게 치던 [[1969년]] [[1월 30일]],[* 아직 [[Abbey Road]]는 녹음 조차도 안 들어간 시기] 앨범에 수록할 몇 곡을 애플사옥 옥상에서 [[게릴라 콘서트|예고도 없이]] 공연했다. 곧 소음공해로 인해 경찰의 공연 중지 명령이 내려졌고, 마지막 곡으로 "Get Back"을 연주했다. 이 옥상 공연은 비틀즈의 마지막 공연이 되었고, [[런던]] 시내의 소수 운 좋은 사람들만 현장을 함께할 수 있었다. 이 공연을 시작으로 비틀즈는 이후 1년간 수많은 마지막 일들을 했다. 마지막 녹음, 마지막 사진 촬영 등.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Get Back' 프로젝트는 옥상 공연과 함께 종결되었지만 앨범 작업은 간단히 끝나지 않았다. 비틀즈 멤버들은 결과물에 만족하지 않았고 두 번이나 앨범용 마스터를 만들었지만 모두 OK사인을 받지 못했고 트랙 순서 조정과 곡 분위기에 대해서도 멤버들 사이에 말이 많았다. 발매는 두 번이나 취소되었고, 실제로 세 번의 발매 계획들을 보면 곡 순서와 수록곡이 조정되어 있다. 대표적인 예로, 첫 번째와 두 번째 계획에는 "Don't Let Me Down"과 폴 매카트니가 만든 "Teddy Boy"가 수록되어 있지만 마지막 계획에서는 제외되었다. 또한 두 번째까지는 계획에 없던 "Across the Universe", "I Me Mine"은 마지막 계획에 포함되었다. 이렇게 계획의 진전이 지지부진해지면서 'Get Back' 프로젝트의 완성은 점점 귀찮은 짐처럼 여겨지게 된다. 이 녹음들이 발매가 될 수 있을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영화 제작도 계속해서 늦춰졌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계속 되자 폴은 멤버들에게 그해 여름 새로운 앨범의 제작을 제안했다. 이번에는 영화나 콘서트 같은 번거로운 것들을 고려하지 않았고 방향도 지금껏 해오던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프로듀싱도 비틀즈와 늘 함께 해오던 [[조지 마틴]]이 맡기로 했다. 이렇게 완성된 [[Abbey Road]]는 'Get Back' 세션과 비슷한 때 작곡된 것들이고 녹음한 시기도 큰 차이가 없었지만, 비교가 어려울 정도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오히려 녹음이 늦게 시작되어 마지막 음반으로 계획하고 있던 [[Abbey Road]]가 먼저 발매되었고, 'Get Back' 앨범의 완성 여부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이처럼 'Get Back'의 완성을 둘러싼 충돌은 이전의 프로듀서이던 [[조지 마틴]] 대신 [[필 스펙터]]가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게 되면서 두드러지게 된 것이다.[* 애당초 발매 예정이던 "Get Back"의 프로듀서는 글린 존스(Glyn Johns)였다.] 대부분의 곡에 코러스와 오케스트레이션을 추가하면서 곡의 분위기가 웅장해져,[* 필 스펙터가 얼마나 의욕이 과했는지 오케스트라가 연주 거부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고, 링고 스타도 필 스펙터 보고 진정하라고까지 했다.] 오버더빙과 멀티레이어 레코딩을 배제하고 '날 것'과 같은 밴드의 초창기 사운드를 재현하려던 프로젝트의 본래 취지와는 정반대가 된 샘이었다. 이러한 완성물을 듣고 폴 매카트니는 앨범의 발매를 막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반면 [[존 레논]]은 "그는 최악으로 녹음된 짐들을 받았지만 거기서 뭔가를 만들어냈다. 내가 들었을 때는 나쁘지 않았다"라고 필 스펙터를 두둔했다. 실제로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은 비틀즈 해체 이후 솔로 커리어 초기에 필 스펙터를 프로듀서로 기용하기도 했다. 결국 'I Me Mine' 녹음 이후 모든 멤버들이 각자의 갈길을 가고 있던 1970년, 비틀즈 멤버 네 명 사이에 파여진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가고 있었고 솔로활동과 사생활의 비중은 더욱 높아지고 있었다. 폴 매카트니가 자신의 솔로 앨범 [[McCartney]] 발매 보도자료를 통해 비틀즈 활동을 지속할 의사가 없음을 밝혔고[* 밴드 멤버들에게 탈퇴 의사를 먼저 밝힌 쪽은 존이었으나, 앨범과 영화 홍보에 차질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폴 매카트니와 앨런 클라인이 공식 발표는 자제할 것을 설득하였다. 어찌 보면 공식적 탈퇴 발표 선방(...)을 빼앗긴 셈이라 존 레논은 폴 매카트니의 인터뷰에 상당히 분개했다.] 다음 날인 [[4월 10일]], 언론을 통해 비틀즈의 해체 사실이 공식적으로 보도되었다. 비틀즈의 열세 번째 앨범은 이름이 'Let It Be'로 바뀌어 비틀즈가 해체된 이후인 [[5월 8일]]에야 발매되었다. '''이로써 비틀즈의 여정은 막을 내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